미국ㆍ유럽산 작품들이 판치던 공연계에서 한국의 전통적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잇달아 개막해 눈길을 끌고 있다. 저승 세계를 다룬 뮤지컬 ‘신과 함께’는 연일 매진을 기록한 끝에 막을 내렸고,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도 남은 회차가 모두 매진되는 등 인기가 뜨겁다. 관객들은 친숙한 소재에 참신한 감각을 입힌 작품들에 열광하고 있다.

▶‘신과 함께’ 등 매진 사례=염라대왕, 오방신 등 한국 전통 설화를 소재로 한 ‘신과 함께’는 평균 객석 점유율 98.7%를 기록했다. 주인공이 죽은 뒤 49재 동안 7개 지옥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스타벅스와 구글을 패러디한 ‘헬벅스’, ‘주글(Joogle)’ 등이 웃음을 준다.

여기에 부모 가슴에 박은 못을 엑스레이 사진으로 보고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는 주인공을 통해 감동까지 선사했다.

연산군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도 오는 26일 마지막 공연까지 전 회차가 매진됐다. 소리꾼 이자람이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와 장녹수 1인 2역을 맡아 한(恨)이 담긴 소리를 들려준다. 연산군이 직접 무당이 되어 폐비 윤씨의 넋을 위로하는 굿판을 벌이는 장면도 등장한다.

▶일제시대 민초들의 삶 다룬 ‘아리랑’ 개막=일제 강점기 일본의 억압으로 만주까지 내몰린 민초들의 이야기 ‘아리랑’도 뮤지컬로 옮겨졌다.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이 원작이다. 의병대들이 거사를 앞두고 둘러앉아 숨죽여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이 뭉클한 감동을 준다.

특히 옥비역을 맡은 이소연이 온갖 고초를 겪으며 ‘쑥대머리’, ‘사철가’ 등을 한맺힌 소리로 뽑아낼 때마다 열화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소연은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이번 작품으로 뮤지컬에 데뷔했다.

‘아리랑’에 감골댁으로 출연 중인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지난 7일 기자들과 만나 “다른 뮤지컬 배우들이 연습 때마다 이소연에게 와서 소리를 어떻게 내느냐고 묻는다. 팬클럽이 결성됐을 정도”라며 우리 소리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명성황후’, ‘허균’ 소재 뮤지컬 개막 예정=명성황후의 삶을 다룬 뮤지컬 두 편도 예술의전당에 나란히 걸린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오는 28일부터 뮤지컬 ‘명성황후’의 20주년 기념 공연이 열린다. 1995년 초연한 작품으로 미국, 영국까지 진출했다.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르는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명성황후의 사진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그렸다. 2013년 초연한 작품으로 당시 99%에 달하는 객석점유율을 기록했다. 역사적 사건을 다뤘지만 진부하지 않은 스토리에 현대적이고 세련된 무대를 가미해 호평을 받았다. 다음달 29일부터 9월 10일까지 공연한다.

한편 서울시뮤지컬단은 조선시대 천재이자 풍운아로 불리는 허균을 주제로 한 뮤지컬 ‘균’을 선보일 예정이다. 허균의 ‘홍길동전’ 탄생 비화 등이 소개된다. 오는 10월 25일부터 11월 1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뮤지컬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젊은 관객들이 뮤지컬 ‘신과 함께’나 이자람에 열광하는 것은 익숙한 것에 새로움을 더했기 때문”이라며 “뮤지컬 ‘맘마미아’ 팬들이 올드팝 아바(ABBA)의 앨범을 사듯, 전통적인 소재를 다룬 뮤지컬을 통해 국악 등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긍정적인 효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