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터지는 자막, 이 맛에 뮤지컬 본다 - 파이낸셜뉴스

원스·로미오 앤 줄리엣 등 오리지널 공연에 감초 역할
유행어 적재적소에 배치 적절한 의역에 관객 공감
어이없는 상황엔 궁서체 서체 하나에 객석 웃음바다

 


왼쪽부터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 ‘인 더 하이츠’, ‘원스’.

 

지난달 24일 뮤지컬 ‘원스’의 오리지널팀 내한공연이 열리고 있는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 시작부터 객석에서 웃음이 ‘빵’ 터졌다. 공연 내내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막 (때문에) 미치겠어” “누가 (자막) 만들었냐 진짜” “(자막) 대박이다” 가난한 거리의 음악가인 한 남자와 체코 이민자인 한 여자의 잔잔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 딱히 웃을 일이 있을까 싶다. 그냥 영어 대사도 아니고 체코식 악센트를 구사한다. 영어 좀 하는 사람도 알아듣기 쉽지 않다. 그런데 공연을 즐기는데 문제가 되기는 커녕 폭소가 터져나온다. 배우와 함께 ‘연기’하는 자막 덕분이다.

1일 다수의 공연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오리지널 내한 공연이나 외국인 관객들이 많이 찾는 ‘한류 뮤지컬’이 증가함에 따라 자막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각 뮤지컬 기획·제작사들은 자막 자막 만들기에 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이다.

오리지널 내한공연의 경우 자막은 언어 장벽을 허물고 다른 언어권의 정서와 문화를 이해시키는 핵심 역할을 맡는다. 원어 대사의 의도와 동떨어지지 않으면서 적절한 의역으로 작품의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 포인트다. 가령 뮤지컬 ‘원스’에서 청소기 수리공인 남자 주인공이 “후버(청소기 브랜드 이름)를 고친다”며 자신의 직업을 설명하는데, 체코 이민자인 여자 주인공은 ‘후버’가 뭔지 모른다. 이때 대사가 자막으로 이같이 처리된다. “후버? 뭘 후벼?” 원래 대사는 ‘후버가 뭐냐’고 묻는 수준이지만 언어유희를 더해 한국 관객들의 웃음코드를 저격했다.

의역보다 원어의 대사를 그대로 전달하는 데 집중하는 작품도 있다.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 중인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이 그렇다. 시적인 대사가 특징인 작품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서다. 이 공연을 기획한 마스터엔터테인먼트 이현선 홍보담당자는 “프랑스 뮤지컬은 시적인 가사가 많아서 의역을 하면 의미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며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자막을 쓰되 장면에 따라 자막이 넘어가는 시간에 더 신경을 쓰고 공연 중 자막을 넘기는 오퍼레이터는 무조건 불어 전공자를 고용한다”고 강조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오리지널 공연을 수차례 들여온 설앤컴퍼니의 노민지 과장은 “작품에 특성에 따라 자막 스타일은 천차만별”이라며 “‘오페라의 유령’처럼 ‘고전’에 속하는 작품들은 원문을 살리는데 초점을 맞추지만 ‘애비뉴Q’나 ‘위키드’의 경우 생활어를 쓰는 작품이라 의역을 통해 풍부한 메시지를 보다 잘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막의 내용은 물론이고 비주얼까지 신경쓴다. 캐릭터마다, 분위기에 따라 서체와 글씨 크기를 달리하는 식이다. 뮤지컬 ‘원스’의 자막을 작업한 김수빈 작가는 “어이없는 상황에 격식있는 궁서체를 사용해 ‘병맛'(맥락없고 어이없다는 뜻의 신조어)느낌을, 일반 단행본에 많이 쓰는 명조체로는 잔잔하고 운치있는 분위기를 살렸다”며 “체코어를 못하는 남자주인공이 체코어로 우스꽝스럽게 말하는 자막은 ‘포천막걸리체’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인 더 하이츠’ 무대 양쪽에는 일본어·중국어 자막도 등장했다. 샤이니의 키, 인피니트의 동우와 성규, 엑소의 첸, 에프엑스의 루나 등 한류 아이돌 스타를 보러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객들을 위해서다. 이 공연을 제작한 SM C&C 관계자는 “제작 단계부터 외국인 관객이 몰릴 것을 대비해 자막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자막이 중요해지다 보니 공연 제작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자막 전문가가 따로 있다. 뮤지컬 ‘원스’를 비롯해 ‘애비뉴Q’ ‘시카고’ 의 자막과 ‘킹키부츠’의 가사번역 및 윤색을 맡았던 김수빈 작가가 그렇다. 김 작가는 “미국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그 정서와 문화를 한국어로 옮기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현지 공연 영상을 보며 어느 부분에서 관객들이 웃고 우는지 미리 확인하는 것이 노하우”라고 설명했다.
노래를 기반으로 하는 뮤지컬 장르의 특성상 음악에 대한 이해도 높아야 한다. ‘위키드’의 번역과 자막을 맡은 이지혜 작곡가가 그렇다. 그는 대학로 티오엠 1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무한동력’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맨 오브 라만차’ ‘벽을 뚫는 남자’ ‘금발이 너무해’와 같은 굵직한 라이선스 작품들이 그를 통해 한국어로 번역됐다.

 

특히 ‘위키드’의 경우 ‘노래하는 자막’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만큼 화제를 모았다. 이 작곡가는 “가독성에 가장 신경을 썼다”며 “배우가 ‘액팅’을 하듯 자막을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자막의 생명은 타이밍”이라며 “공연 전부터 오퍼레이터와 함께 공연 영상을 틀어놓고 자막 넘기는 연습을 수십차례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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