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5 예술방담① 공연예술계의 환경 변화-새로운 생태계의 탐험자들 -weekly@예술경영

[리뷰] 2015 예술방담① 공연예술계의 환경 변화

새로운 생태계의 탐험자들

허영균_예술-공연예술 출판사 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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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생태계’라는 자연과학 용어가 예술계의 담론 안에 종종 등장하기 시작했다. 생태계란 ‘생물(바이옴: biome)’과 그 생물이 속해 살아가는 ‘환경(서식처:habitat)’을 따로 떨어뜨려 보지 않고, 이들을 일종의 유기체로 보는 개념이다. 하나의 장(場)을 완전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장(場)안에 포함된 존재들을 이들과 관계 맺는 물리적 환경과 하나로 통합해서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곧 생태계라는 화제의 등장은 개별적 예술의 집합체로서가 아닌, 예술과 물리적 환경 사이의 상호관계를 함께 인식하며 예술계라는 무형의 총체를 읽어내려는 노력의 출발이기도 하다.

2015년 12월 15일 장애인문화예술센터 이음에서 열린 <2015 예술방담(藝術放談)>의 주제 또한 ‘생태계’를 큰 화두로 삼았다. 올해의 주제는 ‘예술을 둘러싼 환경 변화’. 이와 함께 ‘공연예술계 생태계 변화’와 ‘공연예술계의 관객은 어떻게 변하고 있나’라는 소주제가 제시되었다. 공연예술계와 시각예술계 각각의 패널들이 해당 주제에 관련한 한 해 동안 경험하고 느낀 각 분야의 변화와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공연예술계의 패널로는 안은미컴퍼니의 안은미 대표, 창작그룹 노니의 김경희 연출, 잠비나이의 김형군, 이일우가 초대되었다. 프로듀서그룹 도트의 박지선이 사회를 맡았다. 이 방담에서 주목할 점은 이들이 어떻게 생태계와 관객의 변화를 인지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변화에 적응하고 대응한 방식이다.

생태계의 확장 – 생산자의 시장 찾기

2010년에 데뷔한 밴드 잠비나이는 2013년부터 해외 공연을 시작했다. 2014년에 14개국 35개 도시 52회 공연을 한 데 이어, 2015년에도 14개국에서 44회의 공연을 진행하면서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잠비나이는 해금, 거문고, 피리 등의 국악기와 기타, 드럼 등 일반적인 밴드 악기를 함께 쓰는 음악을 한다. 그들은 지금 시대에 국악기가 음악적으로 기능하는 방법을 찾았고, 잠비나이를 ‘퓨전국악밴드’가 아니라 그냥 ‘밴드’로 이해해주는 해외 무대로 활동의 무게를 옮기게 됐다.

안은미컴퍼니의 1년은 짧았다. 2015년 안은미컴퍼니의 주 무대는 프랑스 파리였다. 한-불 수교 100주년을 맞아 <안은미컴퍼니 3부작-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사심없는 땐쓰>,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쓰>를 천 석 규모의 극장에서 총 8일간 공연했다. 이어 네 개 도시를 투어 했으니, 추산해 보면 약 1만3천 명의 관객을 만난 셈이다. 2016년과 2017년에도 국내보다 해외에서 주로 활동할 예정이다. 현대무용의 관객과 수요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내 환경을 생각하면, 국내 현대무용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안은미컴퍼니일지라도 해외 무대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술가들이 해외 무대에 진출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활동의 확장과 보장을 위해 나의 무대와 관객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잠비나이의 경우, 국내 음악 시장이 축소되는 현실이 해외 무대에 진출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당시 홍대의 인디 음악씬에서 전업 음악가로 살아남는 사람들은 1%에 불과했다. 잠비나이의 구성원들은 국악 전공자들이었고, 때문에 음악이 직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직업 음악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안정적인 위치를 확보해야 했고, 그것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 마침 잠비나이의 음악이 섞여 들어갈 수 있는 경향의 음악이 주류에 진입하고 있던 것이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해외에선 국악기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국악 페스티벌에서도, 록페스티벌에서도, 장르 불분명의 이유로 무대에 세워 주지 않았다. 자연히 음악을 음악으로 받아들여 주는 해외 무대의 손짓이 반가웠을 것이다.

1988년 창단한 안은미컴퍼니는 해외 무대에 일찌감치 발을 들였다. 당시에는 지원금 제도라는 것도, 무용 전문 기획자라는 것도 없었다. 현대무용이 터 잡기 힘든 환경에서 뉴욕으로 걸음을 옮겼고, 10년 동안 자립하여 프로덕션을 꾸렸다. 안은미컴퍼니가 미국행을 택했을 당시와 현재를 비교하면 국내 예술 환경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또한 지원금, 지원기관 등이 생기면서 더 이상 ‘셀프’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지 않아도, 해외 무대에 ‘진출’하는 것이 가능해기지고 했다. 예술 생태계에 ‘지원제도’라는 새로운 존재가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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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 파리가을축제 <사심없는 땐스> ⓒ 안은미컴퍼니

생태계의 새 식구 – 지원제도

국내 지원제도의 역사는 짧다. 해외의 시각에서 현재의 한국은 지원금도 기관도 넘쳐나는 호(好)시기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미 이를 인지하고, 지원의 혜택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지원제도에 대한 안은미 대표의 시각은 달랐다. 안은미 대표는 시작하는 예술가들에게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는 작업을 권했다. 자기 자본을 들여 작업을 해보면 생존의 사투 속에서 자라는 방법론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어 예술가들은 다른 경제관념을 가질 필요가 있고, 자본이 있어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 있다고 했다. 안은미컴퍼니가 뉴욕에서 10년을 버티고 돌아오니, 국내에도 문화재단에 이어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생겼으며, 이렇게 재단이나 센터가 생기니 네트워크가 생성되고 예술가들이 네트워크를 이해하고 이용하게 됐다고 전했다. 불과 10년 정도에 걸친 변화다.

우리의 예술 생태계가 지원제도라는 새 식구를 받아들인 지 약 25년이 흘렀다. 지원제도는 생태계 안에서 다른 유기체들과 날마다 더욱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예술계가 더욱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생태계 유지를 위한 절대적 조건, 관객이라는 ‘소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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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 2015 팸스 초이스 <기억하는 사물들> ⓒ 창작그룹 노니

생태계의 소비자 – 관객의 발견

창작그룹 노니는 극장 공간을 벗어나 주로 야외에서 장소-특정형 공연을 시도하고 있지만, 애초에 김경희 연출은 무대미술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무대미술가로서 그는 극장 관객의 제한성을 체감했다. 극장 공간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 있지만, 그만큼의 한계 또한 있음을 인식한 것이다. 김경희 연출이 답을 찾은 곳은 ‘야외 공간’이었다. 야외 공간에서 영감을 얻어 텍스트를 발견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작업의 방향이 바뀌자, 관객이 바뀌었다. 일부러 찾아온 사람뿐만 아니라, 그 공간을 우연히 경험하고 있는 시민들이 관객이 된 것이다. 새로운 창작의 방법론을 통해 새로운 관객을 발견하게 된 경우다.

한편, 해외에서의 성과가 국내 무대에서 인지도와 인기의 확대로 이어지기도 한다. 잠비나이의 사례가 이에 해당하는데, 분명 이들에 대한 2013년의 반응과 2015년의 반응은 다르다. 그러나 잠비나이는 그 변화가 예상만큼 빠른 속도와 큰 폭으로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롤 모델로 삼았던 일본 아티스트들의 경우에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잠비나이는 불특정한 관객에게 다가가기보다, 공연과 팀 자체의 희소성을 키우고 개발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잠비나이의 공연을 보러 온 소수의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하면서 충성도를 높이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지금은 활동 시작 당시보다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아지고 커지긴 했지만, 여전히 수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음악을 듣기 위해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개념의 불분명, 앨범을 구입하고 즐기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수가 적은 것도 이유다. 앞으로 변화는 쉽지 않을 테니, 희소가치를 키우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자원이 늘어나는 데 비해 예술계가 커지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안은미 대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를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소비자이듯, 예술계 또한 마찬가지라고 진단했다. 결국 예술 시장의 성장은 예술 소비자의 성장이 동반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 잠비나이 ⓒ 잠비나이

▲ ⓒ 잠비나이

생태계의 성장 –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제안

그렇다면 예술 소비자를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예술 소비자를 개발하는 방법은 장기적 비전의 교육이다. 음악, 미술, 체육 등 예체능 과목이 축소되고 폐지되는 교육적 배경 안에서, 과연 색과 음과 움직임을 이해하고, 그것에 호기심을 품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은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다.

안타깝게도 이는 예술가들 스스로가 해결해낼 수 없는 영역이다. 예술계보다 더 큰 환경이, 시스템이 변하고 새롭게 작동해야 한다. 예술가들의 최선은 그 환경의 틈새에 들어가, 나의 역할을 발견하고 수행하는 것이다. 잠비나이가 관객과 소통에 목마른 국악인으로서, 국악인이 아닌 음악가로서 생존 방식을 모색했듯, 창작그룹 노니가 새로운 공연의 형식을 통해 새로운 관객을 발견했듯, 안은미컴퍼니가 지원의 불모지에서 독자적인 콘텐츠를 찾아 생존했듯, 바이옴(biome)으로서 자신들의 서식처(habitat)를 발견하고 확장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촬영_곽은진

 

 

 

 

 
허영균  필자소개
허영균은 LIG 문화재단 계간지 《interview》의 에디터와 공연 창작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재)국립극단 학술출판팀 에디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 프로그래밍 코디네이터로 근무하며 프린지페스티벌, 다리 인큐베이팅, 하이서울페스티벌 등을 통해 창작 활동을 지속했다. 현재는 예술-공연예술 출판사 1도씨를 운영하고 있다. 기록과 창작을 병행하며, 공연예술을 공연의 외부로 끌고 나가는 것이 최근의 관심사다.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