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데이트’였다. 2년차 직장인 최모(27·여)씨는 서울로 올라오는 어머니를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다. 평소 보기 힘든 뮤지컬 공연을 예매했다. 티켓 값 28만원은 적지 않은 돈이지만 설에 내려가지 못하는 죄송함에 주저하지 않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
 
지난 18일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갑자기 일이 생겨 공연을 하루 미뤄서 보면 안 되겠냐고 했다. 공연 날짜까지 5일이나 남아 있어 큰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곧바로 예술의 전당으로 전화해 예약날짜를 바꿀 수 있는지 물었다. 
 
최씨는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상담원은 “공연일을 9일 이하로 남겨둔 경우에는 예약날짜 변경이 안 된다. 날짜를 바꾸려면 수수료 10%(2만8000원)를 부담하고 예매를 취소한 뒤에 다시 원하는 날짜에 예매하라”고 안내했다. 이 상담원은 “고의적으로 좋은 좌석을 선점하기 위해 예약날짜를 수시로 변경하는 블랙컨슈머(악성 소비자)를 막기 위한 조치니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최씨는 시간 여유가 있는데도 환불 수수료까지 물어야 한다는 말에 분통이 터졌다고 했다. 그는 “블랙컨슈머 때문이라지만 모두에게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교환불가’ 정책은 부당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공연업계의 이런 관행은 정당한 것일까. 

최씨가 예매한 예술의 전당은 ‘관람일 3일 전까지 취소하고, 예매 후 24시간 내에 취소하는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켜야만 티켓값을 전액 돌려받을 수 있다. 관람 날짜, 좌석 등을 바꾸는 ‘티켓 변경’을 하려면 취소 후에 다시 예매해야 하고 환불수수료를 물어야 한다. 관람일을 10일 이상 남겨둔 경우엔 환불수수료가 없다. 1∼9일 남았을 때는 티켓값의 10%, 관람 당일엔 90%를 환불수수료로 내야 한다. 

다른 공연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공연업계는 더 좋은 좌석을 차지하려고, 좌석을 재판매하려다 실패해서 수차례 티켓을 변경하는 블랙컨슈머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한다. 

또 공연업계는 기획사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티켓 교환이나 예약일 변경이 쉽지 않다고 했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27일 “소비자 입장에서는 취소한 게 아니니까 수수료가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도 “고의적으로 좋은 좌석을 선점하기 위해 티켓을 수시로 변경하는 경우가 있어 수수료를 물릴 수밖에 없다. 기획사 입장에서는 당장 표를 취소하면 손해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부담을 소비자에게 지우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티켓 변경으로 발생하는 기획사 손해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과물이란 것이다. 소비자분쟁 해결기준을 마련하는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관행을 어떻게 판단할까. 

공정위 관계자는 “현재 분쟁 해결기준에는 공연 티켓 교환 부분이 없다. 계약 변경 여부는 사업자와 소비자 간 협의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만 “공연 하루 전에 변경하면 사업자 손해가 크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있는 경우라면 분쟁 소지가 있다. 해결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