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들의 공연계 지원 돈이 전부가 아닌 이유 - 한겨례

재벌들의 공연계 지원 돈이 전부가 아닌 이유

등록 :2016-03-27 21:08수정 :2016-03-2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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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퀘어 ‘레미제라블’.  사진 블루스퀘어 제공
블루스퀘어 ‘레미제라블’. 사진 블루스퀘어 제공
공연문화 선도? 우아한 장사? 광고 수단?
이탈리아 피렌체라고 하면 아름다운 건축물과 함께 400~500년 전 그 거리를 걸었던 미켈란젤로와 다빈치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위대한 예술에는 메디치라는 한 장사꾼 통치자 가문의 도움이 있었다. 조선의 세종과 정조가 ‘호학’ 군주라고 하면, 메디치 가문은 ‘호예’ 가문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 재벌들도 메디치만큼은 아니지만 예술계를 지원한다.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 등을 지원했던 로마 정치가의 이름을 딴 ‘메세나’ 활동의 일환이다. 그런데 공연예술계의 경우만 살펴보면 그 색깔이 제각각이다. 시민들에게 두루 칭찬받을 곳도 있지만, 장사 쪽에 머물고 있는 대기업도 있다.

 

엘지아트센터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  사진 엘지아트센터 제공
엘지아트센터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 사진 엘지아트센터 제공

■ 엘지와 두산, 돈에 자율성까지 엘지그룹은 2000년 3월 서울 역삼동 엘지아트센터의 문을 열었다. 1100석의 대극장이라는 하드웨어를 갖추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동시대성’과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라는 목표를 명확히 하고, 매년 20여편의 공연을 무대에 올려왔다.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고 있는 외국 창작자를 과감하게 국내에 소개해 국내 공연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엘지 쪽은 돈이 목적이 아님을 여러 번 ‘몸으로’ 보여줬다. 2002년 카마 긴카스의 연극 <검은 수사>는 무대를 공중에 띄워 약 200석의 2층 객석만 관객에게 열었다. 2011년 서재형의 연극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와 이자람의 판소리 <억척가>에선 기존 객석을 포기하고 무대 위에 300~400석의 객석을 새로 만들었다. 극장 관계자는 “피나 바우슈 무용단 공연 때는 4회 전석 매진이었음에도 1억5천만원의 적자가 났다. 모기업의 안정적 지원이 없었다면 이런 모험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엘지, 안정적 지원에다 목표 명확
실험적 작품들 적자 감수 무대 올려
두산, 젊은 예술가 발굴·지원 ‘강점’

 

 

롯데, ‘대관 위주 돈벌이’ 비판받기도
삼성은 블루스퀘어에 기업 스폰서로
이름만 빌려줘 “광고수단일 뿐” 시선

 

 

엘지그룹은 애초 뭉칫돈을 줘 이자수익으로 극장을 운영하도록 했는데, 이자율이 낮아지자 2011년부터는 매년 지원금을 따로 더 얹어주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50% 정도에 불과해 나머지는 모기업이 충당한다.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 자료를 보면, 재단이 매년 40억~50억원(이자수익 포함)을 별도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엘지는 극장 운영을 모두 전문가한테 맡기고, 일절 관여를 하지 않는다. 초대 김의준 대표가 10년 동안 재임하면서 하나의 목표를 고집할 수 있게 됐고,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의 색깔이 만들어졌다.

 

두산아트센터 ‘추물/살인’.  사진 두산아트센터 제공
두산아트센터 ‘추물/살인’. 사진 두산아트센터 제공

최근 엘지그룹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어 지원 규모가 줄었을지 모른다는 얘기가 공연계에 돈다. 극장 고위 관계자는 “갈수록 공연 제작비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수익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모기업으로부터 비용절감 요청이 있거나 지원 규모가 줄어든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두산그룹의 경우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내용 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평가된다. 1993년 서울 종로에 개관한 연강홀은 대관 중심이었지만, 2007년 지금의 두산아트센터로 재개관(대극장 620석, 소극장 100~120석)하면서 ‘창작자 육성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젊은 예술가를 발굴해 제작비 등을 지원하는 것인데,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는 점이 핵심이다.

 

이를테면 두산 쪽은 2007년 재개관을 앞두고 이자람 연출을 ‘발견’했다. 이어 이듬해인 2008년 그의 <사천가>를 소극장(‘스페이스111’)에서 재공연하도록 했고, 2014년 2월 단편소설을 창작 판소리로 만드는 첫 작업의 결과물로 <추물/살인>을 무대에 올렸다. 올해도 지난달 그가 연출한 <여보세요>를 올렸다. 두산의 이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얻은 창작자로는 이경성, 양손프로젝트, 김은성 등이 있다. 두산 관계자는 “신진 창작자를 선정하면 3~5년 동안 신작 창작에 제작비를 전액 지원하고 두산의 무대를 열어준다”며 “극장과 창작자가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두산 쪽이 이처럼 창작자의 요람으로 자리잡은 것은 엘지와 마찬가지로 모기업의 안정적인 재정지원과 자율성 보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산 쪽은 정확한 금액의 공개를 꺼렸으나, 재단의 지원 규모는 매년 수십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석란 예술감독은 재개관 이후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샤롯데씨어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사진 샤롯데씨어터 제공
샤롯데씨어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사진 샤롯데씨어터 제공

■ 문화사업 또는 ‘우아한 장사’ 극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모두 엘지와 두산 같지는 않다. 롯데그룹은 450억원을 투자해 2006년 10월 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1241석)의 문을 열었다. 국내 최초의 뮤지컬 전용극장으로 한국 뮤지컬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 극장은 흥행성이 높은 뮤지컬 작품을 선정해, 부분투자 형태로 공동제작에 참여할 뿐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대관’ 위주로 돈벌이에 머문다는 평가도 나온다. 극장 관계자는 “공연장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좋은 작품을 가져오려 한다. 단순히 흥행성만 고려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공기업 한전도 “문화마케팅과 사회공헌을 위해” 2001년 4월 서울 서초구에 한전아트센터라는 대극장(999석)을 열었다. 모기업의 색깔에 맞게 건물 안에는 전기박물관도 갖췄다. 다목적 공연장으로 무대를 빌려주고 있으며, 2007년까지 위탁운영을 하다 그 뒤로는 한전 홍보실이 직영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 안에 깊숙히 홀로 자리잡고 있어 공연장으로서 분위기를 살리지 못한다는 평가다. 공연계 관계자는 “관객 접근성이 떨어지고 인지도가 낮아 한전은 공연자들 사이에도 인기가 없다”고 말했다.

 

■ 삼성도 극장이 있다?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극장은 2011년 개관해 대극장 가운데 가장 최근에 지어졌고, 여러 대형 공연을 잇달아 무대에 올려 ‘흥행 극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지하철역에서 극장으로 올라가면 ‘삼성전자홀’과 ‘삼성카드홀’이라는 표지가 붙은 갈림길이 나온다. 불과 100~200m 거리에 삼성의 리움미술관이 있고, 제일기획 건물도 멀지 않다. 많은 관객들이 이 극장을 삼성이 지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 극장은 전자상거래 기업인 인터파크의 계열사인 인터파크씨어터가 서울시 땅 위에 650억원을 들여 건물을 짓고 기부채납(20년 운영 조건)한 것이다. 삼성전자와 삼성카드라는 이름은 개관 당시 5년 기한의 네이밍 스폰서로 유치하면서 붙게 된 것이다. 극장 관계자는 “안정적 수익을 내기 힘든 공연사업에서 기업 스폰서 유치는 꼭 필요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다른 기업은 돈을 써서 척박한 공연 분야를 지원하는 것에 견줘, 삼성은 광고 수단으로 활용할 뿐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공연계 사정에 밝은 한 기획자는 “삼성은 개별 공연 작품에는 후원을 하기도 하지만, 극장을 운영하는 등 좀더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공연 창작 지원을 하지 않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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